다행히 어제 밤에는 열이 없었다. 그래서 어린이집에 보내도 될까 고민했는데 아침에 노란 콧물이 나오는 걸 보곤 하루 더 쉬게 해야 겠다 싶었다. 오늘 하루만 제대로 쉬고 선거날인 10일에도 쉬면 도윤이 컨디션이 완전히 회복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렇지만, 엄마는 죽어가겠지. 이미 엄마 컨디션도 좋지 않은 거 같다.
도윤이한테 "도윤아, 어린이집 가야지"라고 하니 가지 않겠다고 한다. 그래서 그냥 밥을 먹였다. 메뉴는 계란 참기름 밥에 콩나물을 썰어 비벼줬다. 도윤이가 좋아하는 참기름과 계란이 들어있으니 먹이기 수월할 거다. 엄마도 계란에 오이무침, 콩나물까지 싹싹 비벼 먹었다. 엄마는 아주 맛나게 먹었지만 도윤이 밥 먹이는 일은 역시 쉽지 않았고 먹는 둥 마는 둥 한다.
도윤이는 "엄마, 나 오늘 어린이집 안 갈래. 영상 볼래"라고 한다. 이녀석, 어제 영상을 좀 보여줬더니 어린이집에 안 가면 당연히 영상을 보는 거라 생각하는 거다. 그래서 엄마는 "아니, 어린이집 안 가도 영상은 안 볼거야"라고 했다. 그러자 도윤인 "그럼 어린이집 다녀오면 영상 볼 수 있어?"라고 반문까지. 다시 엄마는 "어린이집에 가서 밥도 잘 먹고 변기에 쉬도 잘하고 그러면 볼 수 있어"라고 했다. 자꾸 조건부 제시를 하면 안되는데..
갑자기 도윤은 마음을 먹은듯 "그럼 나 어린이집에 갈래"라고 한다. 이때부터 등원 준비가 바쁘게 시작됐다. 월요일에 챙겨야 하는 이불 가방까지 싸야 한다. 베란다에 널린 이불을 걷어서 접어 가방에 넣어야 하는데 베개솜이 안 보인다. 정신 없는데 필요한 게 없으니 분노 게이지가 차오른다. 그냥 집에 있는 베개를 넣어 쌌다. 도윤이 어린이집 가방을 보니 세상에 금요일에 먹은 물통이 그냥 들어있었다. 금요일에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하원을 시켜 엄마가 미처 가방을 보지 못한 것. 얼른 물통을 씻어 새 물을 담아 넣는데, 안내장도 가방에 들어있었다. 상담 안내서다. 질문지에 답변도 해야 한다. 갑작스러운 등원 결정에 할 일도 늘었다.
바쁜 와중에 엄마의 윗배가 아파온다. 쥐어짜듯이. 절로 "아오!"라는 소리가 났다. 두 번 세게 아팠는데, 도대체 원인을 모르겠다. 화장실 배도 아닌 거 같고. "아오 배 아파"라며 배를 움켜쥐고 등원 준비를 하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화장실로 갔다.
우리 도윤이는 또 엄마와 스몰토크를 시도한다. "엄마, 화장실에서 뭐해?"라고 묻는다. 집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린이집에 가서 다 이야기할 이도윤..(블로그엔 밝혀도 도윤이에겐 말 못하는 이상한 엄마)
그래서 엄마는 그냥 "씻고 있어"라고 했다. 논리왕 이도윤은 의문을 제기한다. "엄마 배 아프다며, 배 아픈데 왜 씼어? 응가하고 있어?"라고 묻는다. 엄마는 할 말을 잃었고 그냥 씻는다고 했다. 그렇게 아침에 두 번 배출을 했다. 다행히 설사는 아니었는데 이것 참.. 무슨 일인고..
아침 밥 때문이라면 도윤이도 탈이 나야하는데 괜찮고. 어쨋든 도윤이 몇 숟가락 더 먹이고 옷 입혀 등원 준비를 마쳤다. 짐도 많고 어느새 10시가 넘어가고 있다. "안되겠다 도윤아, 차 타고 가자."
걸어서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를 차 타고 2분 만에 도착했다. 담임 선생님께서 반겨주셨다. 도윤이도 씩씩하게 잘 들어갔다.
이날 도윤이는 "어린이집에 엄마가 나 데리러 왔으면 좋겠어"라고 했다. 그래서 엄마는 처음에 "(도우미)선생님께서 가실거야"라고 했는데, 계속해서 엄마가 오기를 바랐다. 징징거리면 그냥 도윤의 마음을 알겠다는 정도로 답해준다. 어린이집 담임선생님께도 "도윤이가 엄마가 데리러 왔으면 좋겠다곤 하는데, 오늘 도우미 선생님께서 오실거예요."라고 전해드렸다.
도윤이 등원시키고 오니 진이 다 빠진다. 도윤이가 어린이집에 가면 운동하러 가려고 했는데 도무지 에너지가 없다. 온몸이 처지는 느끼이다. 그냥 누워있고 싶다. 이날 겨우겨우 오후에 필라테스를 갔고 그렇게 집에서 뻗었다.
어린이집 알림장을 열어보니 도윤이가 오늘 어린이집에서 엄마가 데리러 왔으면 좋겠다고 했단다. 그리고 선생님께 한참을 안겨있다가 놀이를 시작했다. 에휴.. 그래도 바깥놀이 한 사진을 보면 누구보다도 재밌게 노는 이도윤이다. 친구들과 노는 것도 재밌겠지만 늘 엄마와 함께 있고 싶다는 아가 도윤.
주말에 엄마에게 안겨있을 때 도윤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나 어린이집에 안 가고 엄마 품에 있고 싶어." 언제까지 엄마 품에 있어줄지, 그리고 엄마의 품이 좋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도윤이에게 엄마 품이 많이 필요한 때인 거 맞나 보다. 이런저런 핑계로 이유로 도윤이 곁에 없어줄 때가 많긴 하다. 그래도 엄마 마음 속에 가장 많이 차지하는 건 도윤이라는 걸 언젠가는 알아주길 바란다.